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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대도(大刀)

 추운 겨울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주섬주섬 버스를 타고 도장으로 가면 바삭하게 얼은 도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하 14도의 맹 추위에도 난방을 틀지 않는 새벽 도장은 그야말로 노스랜드... 탈의실에 있는 작은 난로에 도복을 '구워서' 입고 나오면 곧 악마로 변할 양반들이 인사를 한다.

 매일같이 숨이 멎도록 뛰고 칼을 휘둘렀다. 담백하게 얘기해서 대단한 재능도 체력도 없었다. 그래서 뛰다가 너무 힘들면 엉엉 울기도 했다. 그렇게 열이 올라있으면 마치 지옥 한가운데에 서있는 듯 했다. 뛰고 또 뛰고... 그렇게 두시간 동안 엉망이 될때까지 굴림을 당하다가 호구를 벗으면 모락모락 온몸에서 김이 올라오는데 그 허옇게 올라가는 증기가 마치 빠져나온 내 영혼처럼 느꼈다. 그렇게 샤워를 하고 학교에 갔다가 다시 도장으로 돌아가 한 두시간 더 뛰고 집에 들어갔다. 오후엔 그래도 또래들이 많아서 할만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참... 가끔 힘조절 안하는 아저씨들이 허리치기 한답시고 허벅지나 옆구리 때리면 정말 총에 맞는 것 마냥 아팠는데, 가끔은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지기도 했다. 시벌 잘 못하면 허리 치지말라고!!!!!!!! 진짜 도끼 마냥 찍어대는데 나중에 보니 검은색으로 변해있더라.

 뭐 다른 운동도 다 마찬가지로 힘들겠지만... 어렸을 때 겪은 일이라 그런가 지금 이 글 쓰면서도 그 때 맞고 힘든거 떠올라서 식은땀 난다. 아마 어렸을 때라서 더 힘들고 아팠던것 같다. 지금이야 막 90킬로를 육박하는 거구가 되었지만 그때는 워낙 키도 작고 허약했다. 다 큰 다음에 운동하니 그때처럼 죽을 것 같고 그러진 않는데, 이제는 무릎이 아파서 못한다. 아버지가 40대 중반 무렵에 무릎아프다고 이제 검도 못하겠다며 도장 안나가셨는데, 무릎이 대수냐고 했던거 크게 반성중입니다. 이제 서른 하나인데 무릎 아파서 스쿼트도 못한다. 치료하고 싶어도 일 해야하니 병원 갈 시간이 없네.

 뭐 요즘 도장을 나가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매일 칼을 휘두른다. 감을 잃지 않기위해서도 그렇고 몇번 휘두르다보면 쐐액!!! 하면서 칼이 마치 던져지는 것 처럼 느껴질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아직 완전 못쓰게 된건 아니로군 하면서 혼자 흡족해한다. 이제는 몸의 일부같이 느껴진달까... 잘때도 항상 옆에 세워놓고 항상 지근거리에 둔다. 부모님이랑 살 때는 칼이니 창이니 모서리마다 잔뜩 쌓아두고 살았는데, 혼자 살면서는 그냥 간단한 것 몇개만 두고 산다. 뭐 이정도만 있어도... 여동생이 취직하면 대도(大刀) 한자루 선물 한다고 한다니 단단한 놈으로 하나 골라야지. 쫑아야 어서 취직하거라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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